언론보도

제목 "불결하다고요?…쥐 DNA가 바이오의 소부장이죠"
작성일 2019-12-31 조회수 2906
작성자 관리자

"불결하다고요?…쥐 DNA가 바이오의 소부장이죠"

`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 성제경 단장의 쥐띠해 맞이

쥐 연구 통해 인간DNA 해석
신약개발 등 생명 연장 열쇠

출범 7년째 맞는 마우스사업단
유전자 변형 쥐 해외 수출도
"쥐는 고마운 존재…多福 상징"


`쥐`는 불청객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에서는 `쥐잡기 운동`을 펼쳤다. 쥐꼬리를 잘라 학교나 관공서에 제출하는 쥐잡기 운동은 사라졌지만 쥐는 여전히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다. 미키마우스·톰과 제리 등 만화 쥐 캐릭터에 익숙한 세대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하지만 쥐도 특별 대우를 받는 곳이 있다. 한평생 쥐만 바라보며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쥐는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에게 쥐는 연구의 대상인 동시에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를 맞아 쥐를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진지하게 대하는 한 연구자를 만났다. 쥐에 푹 빠진 그는 인간 생로병사의 마지막 퍼즐을 풀기 위해 평생 쥐만 연구하고 있다. 온종일 실험실의 쥐만 보며 살아가고 있는 성제경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장(51·서울대 수의대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서울대 관악캠퍼스 생명공학연구동에서 만난 성 단장은 명함 이메일 주소에서부터 쥐박사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의 이메일 주소에는 `SNUMOUSE(서울대와 쥐의 영단어를 합친 합성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다. 성 단장이 `서울대의 쥐`를 자처하며 쥐를 평생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름부터 어려운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은 유전자 변형 쥐를 통해 인간의 유전자 기능을 이해하는 연구를 한다. 성 단장에 따르면 이는 바이오 산업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와 같다. 인간의 질병 원인을 분석하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기능 해석이 필수적이다. 사업단은 인간과 유전자가 99% 비슷한 쥐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각각의 기능을 분석해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할 토대를 마련한다.

성 단장은 "인간 유전자 지도는 지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로 완성됐지만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 완전히 파악된 건 아니다"며 "유전자 변형 쥐 연구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를 데려다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업단은 2013년부터 10년간 1700억원을 지원받는 국가사업으로 출범했다. 미국(1조1000억원), 유럽연합(8900억원) 등 투자 규모에 비하면 아직 미약하지만 국가 연구과제로 선정된 만큼 앞으로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다.

사업단은 11개 국가에서 19개 연구소가 가입한 국제 컨소시엄의 일원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처럼 까다로운 자격 심사를 거쳐야만 가입할 수 있는 이 컨소시엄에 들어갔다는 건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연구 수준을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성 단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바이오 분야에서 국제 컨소시엄에 가입한 건 우리 사업단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사업단이 출범한 지 6년이 훌쩍 넘으며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연구를 위해 유전자 변형 쥐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유전자를 변형하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해 수출까지 가능해졌다.

마우스(쥐) 연구자들이 자원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것도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뿔뿔이 흩어져 개별적으로만 진행되던 쥐 연구가 통합적·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쥐의 생로병사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한 단계 높이기도 했다. 쥐의 시각, 청각 등 오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 쥐가 자폐증에 걸렸는지 여부 등을 정확하게 측정해 유전자 기능을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유전자 변형 쥐가 자칫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성 단장은 "위험 방지를 위해 첨단 사육시설을 갖추고 쥐의 탈출을 막기 위한 보안과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며 "1년 365일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쥐 연구가 이뤄질 정도로 실험실이 철저하게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성 단장은 마우스표현형분석이 제조업의 소부장처럼 바이오 분야의 경쟁력을 결정지을 중요한 인프라스트럭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가의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마우스표현형분석 분야는 처음에는 다른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추격형으로 투자했지만, 이젠 유전자 변형 쥐를 수출할 정도로 연구 수준이 높아졌다"며 "산업의 근간인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하나만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추가로 여러 노선을 만든다. 바이오 산업의 고속도로(인프라)와 같은 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에도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쥐를 연구하는 성 단장에게 쥐띠 해인 내년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쥐가 사람과 재물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다산(多産)과 다복(多福)을 상징하기도 한다"며 "실험실 안 쥐는 인간의 질병을 분석하는 열쇠인 만큼 내년에는 국내 연구팀이 외국에 비해 더 앞서가는 연구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김유신 기자]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12/1097686/

 
다음글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