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이슈

팬데믹의 역사와 새로운 Disease X

고려대학교 약학대학

송대섭 _ 교수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에서 마우스를 이용한 감염병 모델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약학대학의 송대섭입니다. 코로나19의 전세계적 발병으로, 역대 세 번째로 공식적인 팬데믹을 선언하였습니다.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pandemic)의 역사

기원전 1145년 이집트를 다스리던 파라오 람세스 5세 미라에는 천연두 바이러스 (variola virus)에 감염되었던 흔적인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비슷한 시기의 벽화에는 종교행사를 진행하는 제사장의 얇은 한쪽 다리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poliovirus)에 의한 감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러스의 역사는 긴 시간 동안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을 일으켰던 질병들은 14세기 중국에서 발원해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에 도래한 흑사병이 있습니다. 흑사병은 Yersinia Pestis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60%가 사망했다고 추정한 연구결과가 있으며 최근까지도 산발적인 감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후 16세기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다고 알려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감염병 중 하나인 천연두도 팬데믹 사례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사망률이 높은 무서운 질병이었지만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의 근절을 선언함으로써 인류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정복한 팬데믹 질병으로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세계적 대유행이자 현대 의학 발전 단계에서 발생한 최초의 전염병은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으로 역학과 같은 감염병 전문 분야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군대의 이동과 인구의 과밀화가 대규모 확산에 원인이 되었으며 유럽 외에도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및 태평양 제도로 전파되어 전 세계로 감염자가 확산되었습니다. 스페인독감의 사망률은 10%에서 20% 사이였으며 당시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독감에 걸리면서 사망자 수는 불어났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유행한 독감은 ‘무오년 감기’로 불렸으며 조선인의 약 170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흑사병이 유행하였던 한 세기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1년 만에 사망하였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가 설립된 이후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선언된 사례는 1986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가 그 세 번째 사례가 되었습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2020년 3월 11일 전세계 114개국 12만 명의 감염자와 400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그 확산세를 이어가자 세계보건기구는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을 선언하였습니다. 코로나19는 2021년 8월 현재 전 세계 확진자 2.12억 명, 사망자 440만여 명에 이르며 21세기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사회.교육.문화의 시계는 멈추었고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에도 감염병은 여전히 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피부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 팬데믹의 역사 (출처 : Visual capitalist) ▼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한 팬데믹 사례들 외에도 우리는 2002년 홍콩에서 시작된 사스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2012년 처음 보고되었던 메르스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2013년 살인진드기바이러스라 불리며 세상에 알려진 SFTS, 2014년 전세계에 전파되어 공포를 안겨준 에볼라, 2017년 신생아 소두증의 원인이 되었던 지카 바이러스 등 지속적인 감염병의 위협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감염병의 특징은 이들 신종 감염병의 80% 정도가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19의 기원 또한 사람이 아닌 중간숙주를 통해 사람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종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들 인수공통감염병의 문제는 앞으로 발생 가능성이 줄어들 가능성보다 더욱 빈번하게 출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Spillover”의 저자 데이비트 콰먼은 ‘인간들이 나무를 자르고 토종 동물을 도살할 때마다 밀려나고 쫓겨난 미생물은 새로운 숙주를 찾든지 멸종해야 한다. 그 앞에 놓인 수십억 인간들은 기막힌 서식지이다. 이들이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거나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70억까지 불어난 인간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가축사육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지고 접점은 다양해지면서 동물 유래의 감염병 발생 위험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로 건설과 산림 훼손을 통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토지 개발 그리고 야생동물 거래 등은 동물이 가진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 갈 수 있는 기회를 급속도로 확장 시켰고, 교통의 발달과 급격한 세계화로 인해 활발해진 국제 교류와 여행, 무역 활동은 감염병의 확산을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감염병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의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면서 사람과 동물 그리고 생태계(환경)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이 각광받고 있으며 다양한 학분 분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인류 보건의 당면 과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감염병 X (Disease X)

그렇다면 다음 출현할 감염병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세계보건기구는 2014년 에볼라 유행 경험을 계기로 새로운 감염병에 의해 유발되는 위협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R&D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2015년 감염병에 대한 R&D 청사진을 제시하였습니다.

감염병 우선순위 선정을 위한 요소로 인체 전파력, 치사율, 파급 가능성, 진화 가능성, 의학적 대응책 보유 여부, 감시 및 통제 난이도, 발생지역의 공중보건 상황, 국제사회로의 전파 위험성, 사회적 영향의 9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전문가 그룹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공중보건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나 현재 의학적 조치가 불충분하여 긴급 R&D 추진이 필요한 우선순위 감염병을 발표하였습니다. 2018년 개정된 WHO 2018 R&D 청사진에서 메르스와, 에볼라를 비롯한 7대 우선순위 감염병과 더불어 처음으로 ‘Disease X’가 우선순위 감염병으로 선정되게 되었습니다. ‘Disease X’는 현재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 신종 감염병 혹은 재출현의 위험성이 있는 감염병으로 발생 시 범세계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하는 미지의 감염병을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2019년 발표한 A WORLD AT RISK라는 보고서에서 비말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치명적인 호흡기 RNA 바이러스 병원체의 출현에 대한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으며 2019년 코로나19의 발생으로 전 세계는 첫 번째 Disease X의 발생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의 발생은 점차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언제든 제2, 제3의 disease X는 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바이러스 홍수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으로 위에서 인용한 ‘Spillover’에서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인류는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방역정책의 확립, 백신, 치료제, 진단법의 개발과 같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개인의 노력, 개인의 분별있는 행동, 개인의 현명한 선택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생동물의 고기를 섭취하지 않고, 기침을 할 때 입을 가리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공공장소에 가지 않거나 하는 등의 아주 사소해 보이는 개인의 조그마한 행동도 바이러스 감염의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은 정말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최고의 백신은 손닦기입니다’라는 캠페인처럼 감염병의 시대에 우리는 개인의 위생 관념을 점검하고,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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