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내 이름은 GEM… 몸값 940만원이랍니다”
작성일 2015-07-09 조회수 4458
작성자 관리자
“내 이름은 GEM… 몸값 940만원이랍니다”

 
 
찍찍, 나는 생쥐다.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변형쥐(GEM). 부모가 누군지는 모른다. 실험실에서 만든 수정란에서 태어났다고만 할 뿐. 내 이름은 1, 2, 3 이런 숫자로만 존재한다. 대신 연구원들은 나를 ‘슈워제네거’라고 부른다. 불룩불룩한 근육 때문인데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없어서 그렇단다. 사람들은 일주일마다 내가 사다리를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앞발로 버티는 힘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한다.

이곳 친구들은 저마다 유전자가 하나씩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페드린’ 유전자가 없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앞이 안 보이거나 귀가 먼 친구도 있다.

우리 모습을 보며 너무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도 나이가 들면 뇌에 이상이 생기고 근력이 약해지는 노화가 일어난다. 사람과 비슷하다. 유전체는 99%가 동일하다. 그래서 유전자 때문에 생기는 병도 비슷하다. 2년밖에 안 되는 수명은 사람에 비해 무척 짧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사람은 우리를 연구하고 그 결과에 의지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00대 약이 모두 우리 덕분에 나왔다. 2007년 노벨 생리학상도 우리를 처음 만든 과학자들이 받았다.

초파리나 제브라피시 같은 실험동물도 많은데 굳이 왜 우리냐고?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 지는 다른 동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드는 과정과 병의 증세까지 볼 수 있는 동물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 몸값이 엄청 비싼 친구도 있다. 일본 출신의 ‘폴리오바이러스 리셉터’는 몸값이 940만 원이나 된다. 이 녀석의 쌍둥이들은 매년 2만 마리가 태어난다. 

한동안 세계는 나 같은 GEM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전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는 각각 GEM을 만들면서 서로의 자원을 공유했다. 그동안 GEM 한 종류를 만드는 데 1년 넘게 걸렸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1∼4개월이면 나 같은 GEM이 태어난다. 그러다 보니 이젠 GEM을 만드는 것보다 GEM의 표현형을 분석하려고 한다. 내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려는 거다.


2012년에는 아예 ‘국제마우스표현형컨소시엄(IMPC)’이 생겼다. 사람의 유전자가 2만2000개이니 유전자를 하나씩 없앤 내 친구들도 2만2000마리를 만들어 사람의 질병 지도를 만들겠다는 거다. 그동안 IMPC의 내 친구들은 미국과 유럽 출신이 가장 많았다. 일본과 중국 출신도 꽤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출신 친구들이 새로 모임에 들어왔다. 이 친구들의 ‘아빠’는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 교수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KMPC)’을 만들어 2022년까지 총 17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단다.

한국이 이 모임에 들어온 건 잘된 일이다. 사실 이 모임의 가입 조건이 좀 까다롭다. 1년에 우리를 50종류 이상 만들고 표현형까지 분석할 능력이 돼야 한다. 한국은 1년에 우리를 2종류 이상 만들고 분석할 여건이 되는 곳이 7군데 정도다. 이 조건만 따지면 우리 회원이 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발한 제안을 해왔다. 내 친구를 20종류만 만드는 대신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과 운동 능력의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해 다른 나라의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 대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친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 친구들이 새로 가입했으니 조만간 ‘IMPC 비정상회담’을 한 번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다음글
이전글